중년의 디지털 적응기

1편|우리는 어디에서 생필품을 사기 시작했을까

Don.T 2026. 1. 5. 08:00

도시의 생필품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내가 자랐던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에서 생필품을 사는 풍경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재래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의 장보기는 대부분 동네마다 하나쯤 있던 쇼핑센터나 아파트 단지 안 상가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작고 투박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분명 도시의 ‘마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유, 쌀, 세제, 화장지 같은 생필품은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물건의 종류가 지금처럼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것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익숙함이었다. 장보기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저 생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쇼핑센터가 ‘동네 마트’였던 시절

그 시절 쇼핑센터는 지금처럼 넓거나 세련되지 않았다. 진열대는 빽빽했고, 포장도 단순했다. 하지만 필요한 물건은 빠짐없이 있었다.
계산대 뒤에는 늘 비슷한 얼굴들이 있었고, 주인은 우리가 어느 동에 사는지, 집에 아이가 있는지 정도는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이 집은 애가 있어서 이걸로 줘야 해.”
“지난번에 산 것보다 이게 나아.”
이런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그 말 속에는 판매 전략보다 생활에 대한 이해가 먼저 담겨 있었다. 물건을 고르는 기준은 가격표보다 사람의 판단에 가까웠다.


아파트 상가, 도시형 시장의 중심

아파트 단지 안 상가는 작은 도시의 생필품 창고 같았다. 슈퍼, 정육점, 쌀집, 문방구, 약국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고, 장보기는 산책처럼 짧고 익숙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불편하지 않았고, 가격이 조금 비싸도 큰 불만은 없었다. 누구에게서 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얼굴이 떠올랐고, 다음에 다시 마주칠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신뢰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위에 쌓였다. 소비는 거래라기보다 관계에 가까웠다.


지금의 생필품 시장을 떠올리며

지금의 생필품 시장은 그때보다 훨씬 커지고, 빨라지고, 정확해졌다. 클릭 몇 번이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물건이 놓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어디에서 샀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왔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시장이 편안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불편함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준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서 사는지, 어떤 관계 위에서 소비하는지가 분명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이 글은 과거가 더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지금의 시장을 비판하려는 글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생필품 소비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떠올려보고 싶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기준이 어떻게 지역 쇼핑센터에서 온라인 생필품 시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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