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시골에서 자라셨다.
그리고
1957년,
공부 하나를 붙잡고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그 시절
서울은 지금처럼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친척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곳.
그럼에도 아버지는
배우겠다는 마음 하나로
상경하셨다.

상경하던 날,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에겐 친할머니는
하나의 선택을 하셨다.
자식들 공부시키며 쓰던
일본 싱가 재봉틀을 팔아
그 돈을
아버지 손에 쥐어 주셨다고 한다.
그 재봉틀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의 시간을 이어가던 도구였고
생활을 버티게 해 주던 것이었을 테니까.
그걸 팔아
자식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
그날의 마음은
말로 다 남아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있다.
서울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다시 아침이 오면
또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아버지는 길게 하지 않으신다.
그저
“그땐 다 그랬지”라고
짧게 넘기신다.
하지만
그 한마디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어 있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때
체신부라는 곳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시던 중
한 사람을 만나게 되셨다.
어머니였다.

어머니 역시
낮에는 일을 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고,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버지보다 한발 앞선 사람이었다.
나염집 따님으로
생활에 큰 부족함 없이 자라
굳이 무언가를 더 쥐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아버지를 보셨다고 한다.
말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었겠지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이어가던
그 묵묵한 모습.
이미 가진 사람이
버티고 있는 사람을 알아본 순간.
어머니는
그 성실함에
마음이 움직이셨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학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아무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셨다고 한다.
그 돈은
어디서 생긴 여유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월급에서
아껴 내어준 것이었다.
계약도 없고
약속도 길지 않았던,
그저 믿음 하나로 건넨 도움.

그래서 한번 물어봤다.
“갚으셨어요?”
아버지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평생을 갚았지.ㅎㅎ”
그 말에는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았다.
돈을 갚았다는 뜻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으로,
서로를 지켜낸 세월로
갚아 왔다는 뜻.
그 한마디 안에
두 사람의 시간이 다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만든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마음이 이어져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그 두 사람이
어떻게 한 가족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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