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편 줄거리
한국 전쟁 이후,
시골에서 공부를 위해 상경하신 아버지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며
서울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셨다.
그 시절 체신부에서
서울 토박이였던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고,
두 분의 인생은 그렇게 함께 시작되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 이후
공무원 감원 정책으로 인해
아버지는 공직을 떠나게 되셨고,
이후 약 외판을 시작으로
한약방을 거쳐
결국 제약회사 창업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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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기획]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 어머니의 결심, 그리고 믿음의 이름
일요일마다 연재하고 있는‘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본편에 앞서, 짧게 말씀을 드리고 시작합니다.저는 평소 글을 “입니다, 습니다”로 마무리하는 편입니다.하지만 이 시리즈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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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_아버지가 선택한 길
공장은 송파에 있었고,
본사는 종로6가에 차리셨다고 하셨다.
나는 문득 여쭤봤다.
“왜 하필 종로6가였어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약 도매상들이
종로5가, 6가에 다 모여 있었지.”
그 말 한마디에
그 시절의 풍경이 그려졌다.
종로는 단순한 위치가 아니라
약이 모이고, 흘러가는 중심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한가운데에 본사를 두셨고,
회사 직영 약국도 하나 여셨다고 했다.
만들고, 유통하고, 직접 판매까지.
사업의 흐름을 한 줄로 이어놓은 선택이었다.

전쟁 이후,
사람들의 몸은 많이 약해져 있었고
영양 상태도 좋지 못했다.
약은 꼭 필요했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정부 정책이 바뀌며
국내에서도 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겼고,
제약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흐름 속에서
탕약 중심의 방식에서 벗어나
환제로 만드는 변화를 선택하셨다.
시간을 들여 끓여야 했던 약을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일.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 시절에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공장은 송파에서 생산을 맡고,
종로는 유통과 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
정보가 오가는 곳,
돈이 움직이는 곳.
아버지는 그 중심을
정확히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렇게 제약회사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직원들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업이 안정되던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을 받으셨다고 한다.
당시 회사 근처 동대문 상가에
볼링장이 있었는데,
그 사장이 볼링 협회장이었다고 한다.
그분이 아버지께
볼링협회 부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지만,
아버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제약도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고,
스포츠도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니까
결국 같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선수단을 이끌고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는 일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대한체육회의
체계적인 지원이 자리 잡기 전이었고,
많은 부분을 사비로 감당해야 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선수들과 함께 움직이며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하셨고,
국위선양이라는 이름 아래
묵묵히 역할을 감당하셨다.
사업으로 사람의 건강을 돕고,
스포츠로 나라의 이름을 알리는 일.
아버지의 삶은
항상 사람을 향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훗날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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