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위해 만든 약은
아버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단순히 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방법을
고민하셔야 하는 단계였다.
그 시작이
송파에 있던 공장이었다.
지금의 가락시장 근처.
그곳에는 한때
아버지의 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시절의 공장은
지금처럼 자동화된 설비가 아니라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
하나하나 약을 만들고, 포장하던 공간.
그 안에는
약을 만드는 기술뿐 아니라
사람의 정성이 함께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서울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도로는 넓어지고,
선수촌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시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그 변화 속에서
공장이 머물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큰 결정을 내리셨다.

공장을 경기도 광주로 이전하기로.
그 선택은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이었다.
새로운 공장은
이전과는 달랐다.
현대화된 설비.
그리고 한방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아버지는 그곳에서
더 많은 약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어느 순간,
100개가 넘는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다.
나는 문득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는 어떤 약을 제일 많이 만드셨어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조용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황청심원이었지.”
공장을 이전하면서
기존의 환 형태에서
마시는 형태의 우황청심원으로
바꾸기로 하셨다고 한다.
그 변화는
시대의 흐름을 읽은 선택이었다.
또 하나.
할머니께 효과가 있었던
관절염 약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꾸준히 사랑받았다고 하셨다.

그 무렵,
보울링 역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힘써왔던 협회 활동 덕분인지
보울링은 점점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곳곳에 보울링장이 생겨났다.
그리고 결국,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 과정을 함께하며
협회 임기를 마무리하셨다고 한다.

돌아보면
아버지는 두 가지 길을 함께 걸어오셨다.
사람을 위한 약을 만들던 길과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키우던 길.
그 두 길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이었다.
다음 주에는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마지막 편이 연재됩니다.
아버지가 걸어오신 시간과
그 길 끝에 남겨진 마음을
조용히 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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