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길 위의 발걸음
서울에서 두 시간을 조금 넘게 달리면, 들판이 펼쳐진 고장에 우리 가족의 묘가 있다. 토요일 아침, 가족과 친지들이 일찍부터 차를 나눠 타고 길을 나섰다. 같은 날 벌초에 나서는 이들과 여행을 떠나는 차들로 도로는 이미 붐볐고, 시골길에 들어서자 들판 사이로 이어진 차량 행렬이 끝없이 늘어섰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파란 가을 하늘과 초록빛 들판은 마음을 탁 트이게 했다. 그 풍경 속으로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오늘 하루가 단순한 의례를 넘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낫이 그려내는 시간
묘역에 도착하자, 낫이 풀을 스치는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퍼져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건강과 근황을 나누며 웃음꽃이 피었다.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였지만, 마음은 오히려 여유로웠다. 함께 땀 흘리며 풀을 베어내는 이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확인하고 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벌초는 그래서 묘소를 단정히 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세대를 이어 주는 고리이자 소중한 전통으로 남는다.

세대마다 다른 벌초의 눈길
하지만 세대마다 벌초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부모님 세대에게 벌초는 조상을 기리고 가문을 지켜가는 유교적 전통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다. 그러나 아래 세대에게는 다소 비합리적이고 불편한 관습으로 느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어 시골 묘지를 찾는 일이 번거롭게만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중간세대에 서 있다. 부모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전통의 가치를 이해하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벌초를 할 때마다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어쩌면 지금은 세대 간 간극을 인정하고, 벌초의 본질적 의미―가족과 친지가 모여 화합하는 마음, 그리고 조상을 기억하는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가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묘 앞에서
모든 풀을 베고 묘역이 단정히 정리된 뒤, 나는 조용히 어머니 묘 앞에 섰다. 묘지석에 내려앉은 흙먼지를 손끝으로 닦아내며, 문득 지난 시간이 밀려왔다. 올봄, 마지막 인사를 드린 그날 이후 처음 맞는 추석이다. 늘 웃음으로 가족을 품어주시던 모습, 병상에서도 자식들을 걱정하시던 눈빛이 또렷이 떠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 사이로 그리움이 스며들어 가슴을 울렸다.

기억과 전통이 남긴 자리
돌아서는 발걸음은 아쉬웠지만, 마음 한켠에는 작은 평안이 자리했다. 벌초를 통해 가족이 다시 모였고, 그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묘역을 떠나는 길, 하늘은 더욱 깊어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9월의 끝자락,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어 간다. 슬픔 속에서도 남겨진 기억은 따뜻한 여운으로 이어지고, 전통은 오늘의 그리움과 함께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힘이 된다. 오늘의 벌초는 풀을 베어낸 자리보다 더 깊이, 우리의 기억과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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