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망상에서의 아침을 마치고,
우리는 천천히 귀경길에 올랐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가장 빠른 길 대신
조금 더 느린 길을 택했다.
양양을 지나 한계령으로 향하는 산자락 길.
비가 그친 하늘엔 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도롯가의 나무들은 노랗고 붉게 물들고 있었다.
가을의 기운이 막 절정으로 향하던 때였다.

💧 천천히 달리면 보이는 것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천천히 달리면 보이는 풍경들이 있다.
굽이진 산길 옆으로 가을빛이 짙어지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른 색의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차창을 두드리던 빗방울은 멈췄고,
대신 맑은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졌다.
길가의 작은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은은하게 흘렀다.
아버지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셨다.
그 눈빛엔 지난 이틀간의 여정이
잔잔히 담겨 있는 듯했다.
빠르게 달릴 때는 놓쳤던 풍경들이
천천히 가는 길 위에서는 하나하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여행의 끝은
목적지가 아니라 이런 ‘느림의 시간’ 속에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 곰취식당의 점심
점심은 오색약수터 근처,
예전에도 몇 번 들렀던 곰취식당에서 했다.
황태구이, 더덕무침, 고사리, 곰취무침이 한 상 가득.
집된장찌개에서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다.
식당 안에는 여전히 산나물 향이 가득했고,
창문 밖으론 단풍잎이 물들고 있었다.
밖의 공기가 서늘했지만,
식당 안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밥 냄새로 포근했다.
식사 중, 사장님이 우리를 보며 반갑게 물으셨다.
“어머님은 같이 안 오셨어요?”
그 순간, 잠시 말이 멈췄다.
다른 손님들도 있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조심스러웠다.
나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네, 이번에는 같이 못 오셨어요.”
그 한마디 뒤로,
모두의 마음속에는 같은 생각이 스쳤다.
어머니와 함께 왔던 지난날의 기억이
따뜻한 냄새처럼 조용히 퍼져나갔다.
아버지는 말없이 밥 위에 나물을 올리셨다.
그 손짓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면처럼 마음에 남았다


🌿 한계령 아래의 작은 선물
한계령을 넘은 뒤, 도로 옆 ‘오미자 농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미자청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잠시 차를 멈췄다.
마당에는 막 담근 오미자 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뚜껑 사이로 새콤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그 향만으로도 가을의 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붉게 익은 오미자를 들여다보며
“색이 참 곱다” 하시더니,
자식들 한 병씩 사주시겠단다.
가족들은 저마다 병 하나씩 들고 나서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잠시 붙잡았다.
잠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직접 담근 명이나물 한 봉지를 들고 나왔다.
“이건 저희가 먹으려고 담근 건데요,
가족분들이 보기 좋아서 조금 드리려고요.
어르신이 진짜 부자시네요. 자식부자세요.”
따뜻한 인사와 함께 건네받은 명이나물 봉지 속에는
그 이상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빠르게 달렸다면 스쳐 갔을 풍경이었겠지만,
천천히 달렸기에 만날 수 있었던 순간—
그날의 오미자청과 명이나물은
올가을 우리 가족이 받은 가장 다정한 선물이었다.

🌅 여행의 끝, 마음에 남은 풍경
식당과 농장을 지나 다시 길 위로 올라서니,
하늘은 어느새 맑게 개어 있었다.
길가의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단풍잎들,
조용히 흐르는 음악,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
이번 여행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었다.
88세의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한 가족의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늘 바쁘게 달려왔고,
가끔은 목적지만 바라보며 지나쳤던 길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속도를 늦추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였다.
그 풍경 속에는 바람, 빛,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짧지만 마음 깊이 남는 여행이었다.
추억과 보람이 함께 머문,
그런 하루였다.

천천히 가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가족을, 그리고 삶의 속도를 배웠다.
다음편에서는
이번 가을가족여행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돈티의 따뜻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포천 이동의 40년 노포, ‘이동한우부산갈비’— 출장길에 다시 찾고 싶은 집, 오래된 간판의 힘 (177) | 2025.11.23 |
|---|---|
| 🌙 쌀쌀한 저녁, 뜨끈한 한 끼가 생각나서 — 화도 솥뚜껑 닭볶음탕 (77) | 2025.11.02 |
| [가을특집]☁️ 흐린 아침의 망상해변 – 오션 카페&베이커리 ‘CAFE CLAM’ ② (71) | 2025.10.26 |
| [가을특집]비 오는 날 아버지와 자식들의 여행 – 평일의 동해로 🌧️망상리조트 가족여행 ① (153) | 2025.10.25 |
| 아버지의 정장, 그리고 나의 공항패션 (76) | 2025.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