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교가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
1. 어느 순간, 마음의 속도가 달라졌다
중년이 되니 삶의 속도가 조용히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에는 힘으로 버티고, 의지로 돌파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내 마음의 체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족의 건강, 부모님의 나이,
삶의 무게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지금 나를 붙들어주는 힘은 무엇일까?”
그 물음 앞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신앙’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누구의 권유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체험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용히 문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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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심스럽게 신앙을 바라보게 된 이유
신앙을 다시 돌아보는 과정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제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적는 내용도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 삶을 지나며 마음에 남았던 흔적을
담담하게 적어둔 기록에 가깝습니다.
✔ 마음이 흔들릴 때, 결정보다 ‘멈춤’이 먼저였다
힘든 시기에는 무엇이든 빨리 붙잡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저는
조금 멈춰 서서 내 마음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길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느낍니다.
조급함보다 ‘멈춤’이 제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요.
✔ 가족과 함께 맞춘 신앙의 속도
신앙은 혼자만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존중하고,
한 발씩 천천히 맞춰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속도가 같아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습니다.
✔ 옳고 그름보다, 지금 나에게 ‘위로가 되는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특히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는 옳다·그르다를 따지는 문제보다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길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지친 마음을 붙들어주는 ‘위로의 자리’가 있느냐가
저에게는 더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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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의 이야기 — 새신자 환영회에서 꺼내놓았던 마음
얼마 전 교회에서 열린 새신자 환영회 자리에서 마음의 고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저는 그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차분히 꺼내놓았습니다.
그 순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소천하신 뒤,
우리 가족은 큰 슬픔 속에 있었습니다.
특히 홀로 계신 아버님이 걱정됐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버님이 주일예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교회에 나오는 모습을 보며
저는 ‘아,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붙들어주시는구나’
하는 마음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멋진 경험을 말하고자 한 것도,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 시기에 제가 버틸 수 있었던 마음의 지지대가 무엇이었는지
그저 솔직하게 고백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신앙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성실함과 작은 습관처럼
삶 깊은 곳에서 은근하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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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앙은 특별함보다 ‘생활의 온도’에 가까웠다
중년에 경험한 신앙은 드라마틱한 순간보다 생활 속에서 조금씩 변하는 마음의 온도에 가까웠습니다.
● 하루 중 잠깐 멈춰 마음을 고르는 시간
● 가족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
● 나도 모르게 위로가 되는 말 한 줄
● 오늘을 조금 더 평온하게 살고 싶은 바람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신앙은 어느새 제 삶에 ‘조용한 버팀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명상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연이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중년의 신앙은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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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무리 — 조심스러움 속에서도 쓰고 싶었던 이유
이 글을 쓰면서 사실 조금 걱정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늘 정치와 종교는 신중하게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떤 말도 쉽게 오해되거나 논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적은 이유는 누군가에게 신앙을 권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중년의 어느 시기를 지나며 경험한 마음의 변화를 조용히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신앙은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기준이 될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삶이 흔들릴 때
저를 붙들어준 작은 힘이 있었고
그 힘을 나누는 것이 누군가에게
위로 한 조각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신중합니다.
그러나 신중함과 진심이 함께 갈 수 있다면
이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조용히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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