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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티의 따뜻한 일상

[일요기획]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① | 태극당 롤케이크

by Don.T 2026. 1. 18.

소개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예전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밥을 먹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문득 떠오른 듯 말씀하신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던 이야기,
젊었을 때 했던 일,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요즘 들어
아버지의 말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향한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매주 일요일,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남긴다.
잘 정리하지 않고,
의미를 덧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 그 순간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옮겨 적는다.

이건 인터뷰도 아니고
회상 정리도 아니다.
어머니가 떠난 뒤,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말들을
조용히 놓아두는 기록이다.

 

오늘의 이야기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던 그 시절
요즘 아버지가 하시는 이야기들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하나 있다.
태극당이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아버지에게 태극당은
월급날에만 갈 수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이었고,
어머니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분이었다.

두 분은 그 시절,
체신부(지금의 우체국)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던 시절.
아버지는 하루를 두 번 살듯
시간을 쪼개며 지냈다고 말씀하신다.
그 곁에서
어머니는 늘 조용히 도와주셨다고 한다.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고.
그저
곁에 있었다고.


주말이면 두 분은 덕수궁을 걸었다.
데이트라는 말도 없던 시절,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하루를 정리하듯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월급날.
그 시절에는 꽤 큰 사치였을
롤케이크 한 줄을 사기 위해
두 분은 태극당에 들렀다고 한다.
롤케이크 한 줄,
커피 한 잔.
아버지는 그걸
“그땐 그게 축제였지”라고 말씀하신다.


시간은 흘렀고,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셨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기억이 빠져나갔다.
사람의 이름이 흐려지고
장소가 낯설어지고
시간의 순서가 뒤섞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태극당 이야기가 떠올랐다.
혹시라도
그 맛은 남아 있지 않을까.

나의 유튜브 영상중(2023)


태극당에 가서
롤케이크를 하나 샀다.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내밀며
한 입 드셔보시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 태극당이네.”


그날의 장면은
요즘도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한다.
많은 기억이 흐려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유튜브 영상중(2023년)

이 글은
태극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아버지가 자주 꺼내는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그 이야기들로 이어지는
첫 번째 페이지다.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곳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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