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죽이라고 하면
옥수수죽이라고 하면
요즘에는 가장 먼저 ‘건강식’이 떠오른다.
속을 편안하게 해주고,
몸에 부담이 적은 음식.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 속 옥수수죽은
그런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이야기는
일요일 저녁,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나왔다.
“그땐 말이야,
학교 가면 옥수수죽을 한 그릇씩 줬어.”

1957년, 서울로 오다
1957년,
아버지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버텨내야 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선택지가 많은 때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공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저녁이면 학교로 향해야 했다고 한다.

낮에는 일, 밤에는 학교
낮에 일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학교로 향하던 시절.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
큰 솥 하나가 늘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옥수수죽이 가득 끓고 있었고,
차례가 되면
그릇에 한 국자씩 담아주었다고 한다.
소금을 조금 넣고,
천천히
하지만 남김없이
그 한 그릇을 비우며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그게 그날의 저녁이었고,
하루를 이어갈 힘이었다.

생존의 음식
아버지는
그 시절을 힘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는 그게 밥이었지”
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신다.
지금은 건강식으로 불리는 옥수수죽이
그때 아버지에게는
몸을 위한 음식이기보다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필요했던 최소한의 식사.

한 그릇에 담긴 시간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맛과 영양을 이야기하지만,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옥수수죽 한 그릇 위에는
그날의 노동과
밤의 공부가
함께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는 요즘도
그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힘들었다는 말 대신,
웃으며 꺼내는 이야기들.
아마도
그 시간을 지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제는
자신의 삶을 증명해주는 기억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옥수수죽 한 그릇을 비우며
공부하던 그 밤들이
지금의 아버지를 만들었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다.
오늘의 기록
요즘의 옥수수죽은
몸을 위한 음식이지만,
그때의 옥수수죽은
삶을 위한 음식이었다.
나는
그 차이를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글은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가 버텨온 시간에 대한 기록이고,
말없이 이어져 온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오늘도
아버지의 말 한마디를
이렇게 옮겨 적는다.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곳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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